인터뷰 ① KBS N V리그 해설가 한유미

‘익스큐즈유미’의 매력

글 : 이일섭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   사진 : 이경호   |   촬영 협조 : Courtyard Marriott Namdaemun

마흔 살 한유미가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한창 시절의 스파이크 위력을 뛰어넘는 박진감 넘치는 해설로 V리그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했으며, 와장창 무너지곤 하는 <노는언니>의 허당기 가득한 모습은 높은 시청률과 함께 ‘익스큐즈유미’라는 유쾌한 이름을 덤으로 얻게 했다.

여자 프로배구 V리그가 학교 폭력의 악재 속에서도 역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올시즌 연인원 2,154만 명의 시청자가 TV를 통해 여자배구 경기를 본 것으로 집계됐으며, 월드 클래스 김연경의 파워를 지켜볼 수 있는 경기의 시청률은 최고 1.887%에 이른다. 지난해 프로야구의 5개 방송사 평균 시청률이 0.782%인 점과 비교하면 여자배구의 인기가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김연경의 플레이를
가장 잘 간파하는 해설 능력

KBS N 해설위원 한유미에게도 이번 시즌이 가져다주는 감회는 남다르다. 현역에서의 은퇴와 함께 시작한 해설위원 구력 3년을 완성하며, 비로소 경기 중계의 감을 터득하게 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여성 스포츠 스타들의 ‘부캐’ 프로젝트 <노는언니>에서 자연스런 예능감을 발휘하며 ‘윰여신’으로 불리던 현역 시절의 인기를 재현해 내기도 했다.

 

한유미의 경기 해설 능력은 김연경의 힘과 기예가 중첩된 플레이를 설명하는 데서 단연 돋보인다. 시선은 대각을 보고 있지만 직선으로 스파이크를 꽂는 페이크 모션이나  세터의 손아귀 안에 정확히 보내는 ‘식빵’ 언니의 택배 리시브에 이은 칼날 같은 C퀵을 그녀만큼 정확하고 예리하게 설명해 내는 이는 없다. 레프트 스파이커만의 공격 본능과 습성이 그녀에게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해설 포커스는 이처럼 화력을 뿜는 공격에 두고 있다. 좀 완만하고 비음이 섞인 음성임에도 그녀의 해설에 박력이 넘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많은 배구팬이 인정하는 사실이지만 한때는 한유미가 한국 여자배구 최고의 레프트였던 시기가 있었다. 장윤희·구민정으로 이어지던 1990년대 거포의 계보는 2000년대가 시작되며 한유미로 이어졌고 정확히 5년 후 그 바통은 김연경에게로 넘겨졌다.

 

한국 여자배구가 2012년 런던올림픽 4강 진출 신화를 이루며 주역 김연경에게 올림픽 MVP와 ‘배구계의 메시’라는 칭호가 주어지는 동안 한유미 또한 탁월한 조커 역할을 해내며 세르비아와 이탈리아를 격침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무쇠처럼 단단하던 어깨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고 고질적인 허리 통증과 무릎인대파열, 연골 연화증의 악화로 지난 2018년, 19년에 이르는 실업과 프로에서의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래도 그녀 삶의 근간은 여전히 배구다. V리그 중계 해설을 위해 장충체육관과 수원실내체육관을 출입하는 빈도는 현역 시절보다 더 많아졌으며, 힐스테이트여자배구단의 유소년배구교실을 이끄는 일도 병행 중이다. 코트에서의 막강한 카리스마와는 달리 허당 기를 내뿜으며 폭소를 유발하게 하는 E채널 예능 <노는언니> 출연 또한 치솟는 여자배구의 인기에 힘입어 그녀가 전격 발탁됐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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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의미는 ‘후배들의 버팀목’

최근 이재영·이다영 선수의 학폭과 몇몇 선수의 팀 내 군림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월드 스타임에도 팀 동료와 후배를 우선으로 여기는 김연경의 인성이 재조명된 바 있다. 자신의 자리를 이어받은 후배가 ‘실력보다 사람 됨이 우선’이라는 미덕을 실천한 일이 그녀를 새삼 흐뭇하게 한다. 그녀 또한 팀 내 최고참이자 연봉퀸이던 시절 ‘후배들이 하는 허드렛일 나도 같이 한다’를 선언하며 물통과 볼 주머니를 들고 나르며 위계가 아닌 평등에서 비롯된 팀워크를 만드는 일에 앞장섰기 때문이다.시간은 앞으로 나아가고 코트는 새로운 얼굴들로 채워지는 법. 영원히 이길 수도 없고 영원히 존재할 수도 없는 허망한 승부의 세계에서 자신을 지켜내는 일은 높은 공격 성공률과 인센티브가 다는 아니다. 때리고 막고 구르는 그 승부의 현장 속에서 겪는 타인과의 관계와 거기에서 비롯되는 위로, 이해력, 인연 등이 더 성숙하고 건강한 자아를 만든다는 걸 그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이제 사십 세가 됐다.
마흔 살이 됐다는 게 잘 실감이 나질 않는다. 코트에서의 승부욕으로 내 허점을 감출 수 있었는데 <노는언니> 덕분에 모든 게 다 탄로가 나고 말았다. 명쾌한 답을 갖고 있는 박세리 언니나 뭐든 잘하는 남현희 언니에 비해 아는 것도 없고 하는 것마다 와장창 사고를 내는 찐 허당이 나이 마흔이라는 게 사실은 좀 부끄럽다. 그러나 최고참의 실력이 반드시 최고는 아닌 것처럼 마흔 살이 됐다고 해서 서른 살 때의 불안함이나 스무 살 때의 갈등이 싹 사라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요즘도 허둥대거나 쫓기지 않고는 좀체 하루가 가지 않는다. 완전해진다거나 안정세로 접어든다는 말, 현실에는 해당되지 않는 얘기다.

무명으로 지내왔던 선수들의 맹활약을 보면 경기 해설 중에도 눈물을 쏟곤 한다.
현역 시절엔 경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하고 공격 효율이 으뜸인 에이스가 돼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팀 후배들의 고달픈 사정이나 마음속 고민을 헤아리는 일은 그다음이었다. 팀워크에 문제가 될 수 있는 말이나 행동도 여럿이 있는 데서는 못 하도록 했다. 하지만 나 또한 한 시즌을 통째로 날리는 부상을 당했었고 도전했던 해외 리그 진출이 무산돼 자존심을 깡그리 구겨야 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부터 오지 않는 기회를 기다리는 잘 안 풀리는 선수의 응어리를 알 수 있게 됐다.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는데도 묵묵히 훈련에 임하며 팀의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후배들을 보면 눈물부터 난다. 안돼서가 아니라 너무나 장해서다. 그녀들이 결실을 맺는 날이 곧 한국 여자배구의 진정한 번영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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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유미는 은퇴를 하고 나서야 평범한 개인으로 사는 일이 어렵다는 걸 알게 됐다. 집을 구하는 게 너무나 복잡해서 공모주식이나 비트코인의 개념은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선수 생활에 단련된 진심을 다하는 노력은 해설가와 TV 예능 활동에 큰 보탬이 된다고 얘기한다.

 

어떤 장소를 가장 좋아하나. 엄마 집? 카페?
게임이 펼쳐지는 경기장으로 가는 게 가장 즐겁다. 옛날엔 지면 죽는다는 생각에 가는 내내 비장해 했었는데 지금은 나를 폭 감싸주는 강보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물론 예측불허의 경기를 해설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서 긴장을 놓을 순 없지만 사방으로 넓기만 해서 좀체 집중을 할 수 없었던 수원실내체육관에서조차 생각을 말로 옮기는 일에 막힘이 없게 됐다. 거긴 내 소속팀인 현대의 홈구장이었는데 너무 산만한 구조여서 우린 홈경기가 더 어렵기만 했다. 실수를 유발하게 하는 방만하게 퍼져 있는 돔이 그땐 참 원망스러웠는데 지금은 그 끝을 올려다보며 심호흡을 한다.

어떤 해설을 하는 데 중점을 두나.
배구공은 럭비공의 향방보다 더 예측하기 어려운 데로 날아가곤 한다. 레프트가 리시브를 받고 이어 스파이크를 때리는 매우 분주한 절차 속에도 사이에 세터의 토스 연결이 있는 것처럼 배구는 여섯 명 멤버가 철저하게 호흡을 맞춰 하는 팀 게임이다. 밤낮 없이 연습을 하는데도 호흡과 연결은 늘 틀어지기 십상이어서 기회가 오히려 실책으로 끝나 승부를 어렵게 만든다. 그러나 훌륭한 팀은 승부처마다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기사회생하곤 한다. 진정한 강팀은 밀리는 듯하면서도 절대 클러치 상황을 놓치는 법이 없다. 나는 그 묘한 승부의 갈림길을 시청자와 공유하고 싶다. 경기의 승부를 넘어 수많은 우연과 인연이 행운과 불운을 만드는 우리 삶을 스스로 뒤집거나 이어가는 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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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1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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