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리게, 프리마발레리나의 경쾌하고 화려한 귀환

발레리나 김지영

글 : 이일섭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   사진 : 이경호

눈부신 8월 드디어 에이스 김지영의 발레 무대가 찾아온다. 아름다운 선과 표현력을 기반으로 스피드와 템포가 더해진 발레 모션을 만들어내는 그녀는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발레리나다. 국립발레단을 떠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그 명망과 스타성이 여전한 마흔넷 발레리나 김지영의 경쾌한 여름을 전한다.

안중근 의사 순국 111주년 창작 발레서 부인 역으로

 

국립발레단 퇴단 이후 경희대 무용학과 교수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프리마발레리나 김지영이 그녀의 오랜 근거지였던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한여름을 보내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순국 111주년을 추모하는 창작 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에 참여해 안 의사의 아내인 김아려의 춤사위를 연마하고 있는 것이다.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 <라 바야데르> <로미오와 줄리엣> 등 국립발레단 시절의 레퍼토리와는 그 양상이 좀 다르지만 창작 발레의 새로운 표현법과 음악에 애착을 두고 있는 그녀에게 김아려의 영혼을 찾아가는 일은 설레고 기쁜 여정이다. 김아려 여사에 관한 기록과 일화가 전무해 그녀의 마음을 춤으로 옮기는 일이 벽에 부딪히곤 하지만 강직함 이면에 낭만적 기질이 다분했던 안중근 의사의 다감함을 생각하면 그의 반려자였던 김아려의 표정과 몸짓이 어떠했을지 이내 상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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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천국에서의 춤>의 연습 장면. 상대는 안중근역으로 참여한 유니버설발레단의 수석 무용수 이동탁이다. 8월 13일부터 15일까지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의거를 감행하던 1909년 10월 안 의사는 조국의 독립만큼이나 간절한 바람을 하나 숨기고 있었다고 한다. 이토 히로부미가 탄 특별열차보다 아내와 두 아들이 타고 오는 만주열차가 먼저 도착해 가족을 만난 후 거사를 행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고 그 이후에도 부부가 대면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라는 안중근 의사의 유언을 모티프로 그녀는 좀 더 밝고 환한 몸짓으로 가슴 아픈 사랑의 고통을 승화시킨다는 일념이다. 안 의사가 기대고 평안을 느끼는 고향이 되어주는 것이 이번 무대에서 그녀가 해내야 할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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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1 김지영이 오데트로 분한 <백조의 호수> 핀업 이미지. 흑조 오딜은 워싱턴발레단으로 진출한 후배 이은원. 2 김지영은 당차고 대담하고 거침이 없다는 점에서 마타 하리와 많이 닮았다는 얘길 들었지만 《마타 하리》를 공연하는 내내 그녀의 사랑에 대한 집념과 순진무구함에 마음이 끌렸다고 한다. 

 

국립발레단 떠나 대학 강단에… 원숙한 춤선의 미 예고

 

백팩에 토슈즈를 두세 켤레쯤 넣고 연습실을 오가던 수석 무용수 시절이 힘들까? 하이힐을 신고 학교로 출근하는 지금의 교수 생활이 더 고될까? 두 해 전의 그녀라면 “하이힐을 신느니 그냥 토슈즈를 신을래요”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그녀는 이렇게 얘기한다. “애증으로 토슈즈를 견뎌낸 것처럼 하이힐을 수긍할 만한 이유를 찾아야겠죠”라고 말이다.  

 

학내 연습실에선 그녀 역시 토슈즈를 신고 학생들과 함께 춤을 춘다. 파이브, 식스, 세븐, 에잇 기본 구령에 이어 ‘턴아웃’ 동작에선 무릎을 곧게 펴라, ‘플리에’ 동작에선 히프에 힘을 더 주라며 흘려듣기만 했던 지도 선생님의 조언과 요령을 이제는 자신이 학생들에게 똑같이 되풀이하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항시 무릎을 곧게 펴고 히프에 힘을 줘야만 정형화된 발레 모션이 좀 더 자연스럽고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을 이들이 알게 하는 것이 자신의 본분임을 절감한다.  

 

그러나 관객을 압도하는 자신의 무대 장악력과 테크니컬한 움직임, 높은 점프력만으로 후학을 양성해 낼 수 없다는 걸 지난 2년의 시간이 증명해 주었다. 이렇다 할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자신의 동작을 보면 이내 따라하고 호흡까지 맞춰내는 프로무대의 후배들과 학생들 사이엔 엄연한 차이가 있었다. 학내 공연을 단숨에 프로무대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했던 조급함은 과욕을 넘어 자신을 억압하는 사슬임을 알게 됐지만 그 시행 착오는 학생들의 가능성과 무용학부의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비좁은 현실 안에서 새로운 여백을 발견해 내고 그것을 실마리 삼아 더 큰 무대를 만들어내는 건강한 아티스트의 감수성. 마흔넷 김지영의 경험과 예지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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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춤춰왔던 배역에 비해 김아려라는 인물은 어떤 차이가 있나.

“처음 접하고 도전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더 많은 궁금증과 상상을 자아내게 한다. 안중근 의사를 어머니인 조마리아 여사 이상으로 사랑한 여인이었고 안 의사 또한 그녀에게서 어머니보다 더 편안한 안식과 위로를 얻고 있다. 나라를 구하는 일에 모든 걸 던진 남편을 시종일관 지지하고 헌신하는 배역인데 내가 과연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첫사랑 로미오에게 모든 것을 거는 줄리엣을 가장 인간적인 캐릭터로 여기며 좋아했던 데 반해 자신을 속이고 배신한 알브레히트를 용서하며 끝까지 사랑해 내는 지젤의 마음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지고지순하고 상황에 순응하려는 캐릭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인생이 아무리 고달프고 힘겹다고 한들 조국 독립과 동양 평화를 위해 순국한 안중근 의사와 그 곁을 지킨 김아려 여사만큼 외롭고 고통스러웠겠는가 하는 반성을  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소득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무얼 하나.  

“창문을 열어 날씨가 어떤지 확인하고 라디오를 켠다. 중증의 디스크와 아킬레스건 통증으로 흐린 날이 달갑진 않지만 요즘처럼 무더운 날에 비가 내리면 너무나 반갑다는 생각이 든다. 다이얼은 언제나 93.1MHz - KBS 클래식FM에 맞춰져 있다. 음악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출중해야 춤을 잘 출 수 있다는 이유에서 틀어놓긴 하지만 생각해 보면 지금 흐르는 음악이 라흐마니노프 협주곡인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인지도 모르며 진행자의 멘트도 귀 기울여 듣질 않는다. 그냥 방 안에 흐르는 공기라고 해야 할까. 음악이 들리지 않으면 허전하다 못해 불안해지고 만다.” 


현역 은퇴 2년, 무엇이 달라졌나. 

“무대를 떠나 지도자로 안무가로 제2의 삶을 시작한 동기들을 만나면 우선 입을 헤 벌리는 것으로 은퇴의 후유증을 표시하곤 한다. 그러곤 “춤출 때가 좋았어”라며 예전만큼 즐겁지 않은 요즈음에 대해 운을 뗀다. 모두들 여전히 춤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데도 무대 밖에서 춤을 대하는 일에 이런저런 고충을 느끼고 있다. 아마 그건 익숙했던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지내야 하는 낯설음과 어색함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무대 위에서 춤을 출 때 느끼는 절정의 충만함을 더는 느낄 수 없다는 상심이 말할 수 없이 크다. 그래서 의뢰가 들어오는 공연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애착을 갖게 되며 현역 시절보다 더 열심히 연습에 임하고 있다. 그리고 교수라는 내 새로운 직함에 안착하려 노력 중이다. 내 춤보단 강의실의 학생들이 더 좋은 무용수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와 지도안을 마련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오늘 아침엔 어떤 생각을 했나.  

“더는 집밖의 세상에 나가지 않고 침대와 소파와 고양이가 있는 내 아파트에서 조용히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곳에 나를 버려두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 대담하고 거침없고 당차고. 하지만 그것은 발레가 만들어놓은 무대 위에서의 내 일면일 뿐 실제의 나는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내 생각을 전하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에 젬병인 유약하고 내성적인 존재다. 물론 그것이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계기가 되지만 사회의 문턱을 넘는 일에 피곤해 하고 무의미해 하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너무 잦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춤을 추러 우면산 아래로 오지 않았나.    

“스스로 머리채를 끌며 억지 춘향으로 집을 나서다 얼마 전 한 선배가 들려준 얘길 떠올렸다. 춤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만둬야 한다는 말이었는데 이제 춤에 통달했을 뿐만 아니라 그 춤으로 인해 인생에 대해서도 다 알게 됐으니 어쩌나 하는 생각을 했다. 공연을 하면 할수록 춤에 대한 갈증이 커졌고 무대에 대한 부담도 증폭돼 한동안 공황장애 증상을 앓기도 했다. 찬물을 마시는 것으로도 복식호흡을 하는 것으로도 해결이 안 돼 약을 먹고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공연을 해야 했다. 주변에서 여전히 잘하고 있다, 훌륭하다고 했지만 왜 그렇게밖에 점프가 안 됐는지, 몸은 왜 이렇게 아프고 무거운지 힘들고 불안해 미칠 지경이었다.”  


어떻게 그 고통을 이겨냈는지.   

“약의 도움이 컸다. 내 힘만으로 그 터널을 빠져나올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발레가 주는 위안과 깨달음이 컸다. 손상되고 고장 난 몸을 원료로 춤 동작을 만들고 도약을 하면서 내게 더 집중할 수 있게 됐고 자연스레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덜 신경 쓰게 됐다. 나 스스로 괜찮다고 여기면 남들도 나를 괜찮다고 여길 수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30년 40년 이상을 무대에 서도 실수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디테일을 놓쳤다고 해서 공연이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 실수를 해도 하지 않은 듯 무심하게 넘기는 의연함과 뻔뻔함을 좀 더 지녀야 한다는 거다. 춤도 인생도 시간이 흐르면 다 잊히고 우리도 다 사라지는 유한한 존재일 뿐이다. 신념을 갖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절대적인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된다. 자신감과 겸손함, 자연스러움. 이것이 춤을 통해 얻은 내 삶의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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