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① 축구해설가 최용수

만 오십 세 독수리 감독 ‘불사조’ 되어 날아오르다

글 : 이일섭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   취재 협조 : SBS, FC서울

SBS 축구해설가 최용수가 스트라이커 레전드의 명성에 예능감을 더하며 새로운 매력을 발산하고 있다. 호탕하고 구수한 입담이 담긴 ‘막걸리 해설’로 화제를 만들어내던 그가 <안 싸우면 다행이야> <와카남> <골 때리는 그녀들> 등의 TV 예능을 통해 또 다른 전성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그의 최종 목적지는 단연 축구 현장. 그라운드에서의 열정을 불사르기 위해 유쾌한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독수리 감독 최용수와의 건강한 만남을 전한다.

만 오십 세의 시간을 나는 독수리

 

매서운 눈매로 패널티 박스의 제공권을 장악하던 현역 시절의 최용수를 우리는 용맹스런 독수리로 부르곤 했다. 빠르고 강력한 질주와 내려찍는 헤더, 단호한 결정력이 대형 맹금류의 공격 본능과 닮았기 때문이다. 높이와 박력으로 골문을 습격하던 스트라이커 최용수에게서 우리는 야성의 축구가 어떤 마력을 발휘하는지 절감하곤 했다. 

 

그는 지도자로서도 성공 가도를 달렸다. 2012년 FC서울 사령탑에 오른 그는 같은 해 리그 우승컵을 들었고 3년 후 2015년엔 대한축구협회 FA컵 우승을 일궈내기도 했다. 2016년 중국 장쑤 쑤닝팀의 감독으로 잠시 떠나 있었지만 침체기에 빠진 FC서울을 구출하기 위해 2018년 다시 컴백을 했고 지난해까지 탁월한 승부사의 기질을 발휘하며 팀의 리더로 활약했다. 

 

만 오십 세가 된 올해 그는 냉엄한 승부의 세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변곡점을 맞게 됐다. 프로 데뷔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FC서울과는 지난해 작별을 고하며 감독직에서도 하야를 선언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전환점이 찾아왔다. 생애 처음으로 이기고 지는 일의 고단함에서 벗어나 무적無籍의 자유인으로 지내는 그에게 예능 채널에 합류하는 기회가 온 것. 

 

지난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부터 그의 시원하고 걸쭉한 해설은 인기가 높았지만 올여름 도쿄올림픽 남자축구 경기 해설은 ‘최용수 어록’을 만들어내며 그의 예능 진출에 가속도를 내게 했다. 더욱이 온두라스와의 3차전 경기 해설은 최용수의 축구관과 예능 감각이 조화를 이루며 그를 가을 방송가 개편 캐스팅 1순위로 꼽는 결정판이 됐다. 전반 38분 온두라스의 카를로스 멜렌데스 선수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하자 최용수는 “오늘 주심이 상당히 능력 있는 것 같다”며 온두라스의 기를 누르는 짓궂은 농을 던지기도 하고 권창훈의 프리킥이 골로 연결되지 않자 “저 공이 어느 나라 거죠. 독일 볼이 좋다는 것도 다 옛말인 것 같아요. 권창훈 선수가 굉장히 잘 차는 선수인데…”라며 상대와 우리의 심리를 쥐락펴락하는 명감독의 기질을 보여주었다. 예측불허의 반응과 원색적인 표현, 투박한 지적 등 그가 도쿄올림픽 축구 해설에서 보여준 거세지만 유쾌한 성향은 그를 좋아하고 추종하게 하는 거대한 매력이 되고 말았다.  

 

 

만 오십 세 청운의 꿈은 감독으로 복귀하는 것  

 

그러나 그의 삶이 마냥 경쾌하고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황선홍·안정환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출전 기회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더욱이 조별리그 2차전 미국전에서는 노마크 1m 거리에서 골대 위로 공을 날리는 통한痛恨의 슛을 자행하기도 했다. 월드컵 최종예선까지는 한국을 대표하는 스트라이커였지만 본선에선 그의 플레이가 더는 조명을 받지 못하고 말았다. 

 

감독이 되어서도 수세守勢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불안과 강박이 그를 쓰러지기 직전까지 몰고 갔다. 2021년 슈퍼매치에서 수원에 2:0으로 무릎을 꿇게 되면서 분노한 팬들이 흔들고 부수어대는 버스 칸에 1시간40분 동안 갇혀 있어야 했다. 이어 2014년 FA컵에서는 비참하게 안방에서 성남에 우승컵을 내주기도 했다. 

 

축구장이라는 콜로세움에선 반드시 이겨야만 목표한 것을 얻을 수 있다. 실패가 성공의 발판이라지만 계속 지다가는 추락과 강등으로 더는 1군 무대에 설 기회를 완전히 잃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강박이 난관을 돌파하도록 몰아붙이는 원동력이 돼주곤 했지만 그 인내가 자신을 완전히 쓰러뜨릴 수 있는 원흉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최근에야 알게 됐다.  

 

피를 말리는 승패의 갈림길에서 살아남으려는 안간힘이 순환기에 이상을 가져와 지난해 12월 심장판막수술을 받아야 했다. 몇 년 전부터 가슴 통증이 있었지만 부상을 일상으로 견뎌온 터라 별다른 두려움은 없었다. 그러다 호흡이 몹시 불안정해 응급실을 찾았고, 매우 위중하다는 진단을 받으며 수술실로 직행하게 됐다. 축구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으니 몸에 병이 드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지만 그다음에 날아든 비보엔 그도 눈물을 쏟을 만큼 고통스럽고 참담했다.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이 췌장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었다. 자신보다 더 밝고 건강했던 동료의 죽음 앞에서 삶이 참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저세상에서도 축구화를 신고 지낼 친구를 위해 자신의 남은 축구 인생을 더 값지게 보내기로 다짐했다. 

 

최근 다작의 예능 출연으로 그의 노선에 변화가 있는 듯하지만 그의 만 오십 세 청운의 꿈은 다시 그라운드의 리더로 복귀하는 것이다. 승부의 세계에선 경험할 수 없는 새로움과 다양성에 시야의 폭을 넓힐 수 있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본분이 아님에 선을 긋는다. 그는 감독으로서의 자존심을 만회할 순간을 지금 이 순간에도 도모하는 중이다. 유능하고 인간적이며 무엇보다 승률에선 더욱 유능한 감독이 되기 위해 다시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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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수 감독은 자신이 진두지휘하는 ‘구척장신팀’이 <골 때리는 그녀들>의 방영 의미를 보여줬다는 점에 크게 고무되곤 한다. 부족한 실력을 노력과 근성으로 극복해 내며 ‘4강 반전’을 이룩한 ‘톱모델의 성장기’는 그에게 많은 영감과 용기를 주곤 한다.


선수 시절에도 수술을 한 적이 없던 독수리 최용수가 어쩌다 심장판막수술을 하게 됐나. 

“승패에 대한 부담감과 거기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다. 한 경기의 승패에 따라 날아오는 후폭풍이 상당하다. 그것에 의연해지려고 꽤나 애를 썼지만 완전히 놓을 순 없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며 불안해했고 술, 담배에 의지하며 그 험악한 순간을 넘기곤 했다. 이 정도의 무리론 쓰러지지 않는다는 건강에 대한 과신도 한몫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수술이 긍정적인 면을 만들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더는 내 몸에 존재하지 않도록 가볍고 즐거운 삶을 사는 일에 매진하게 됐기 때문이다.”   


<골 때리는 그녀들>의 ‘구척장신팀’이 연일 화제를 몰고 있다. 그녀들을 처음 대면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

“현장의 지도자로 돌아가야 하는데 최약체 팀을 맡아 내 이미지만 나빠지는 게 아닌가 염려한 것도 사실이다. 축구라는 게 무게 중심이 낮아야 공수의 성과를 올릴 수 있는데 팀 이름처럼 모두 장신이니 애를 좀 먹겠구나 싶었다. 더구나 그녀들은 홀로 걷고 혼자서 포즈를 취하는 모델이라 팀플레이에 익숙하지 않은 존재가 아닌가. 하지만 그건 내 짧은 생각이었고 그녀들의 흡수력은 실로 대단했다. 팀 플레이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는 내 말을 그냥 흘려듣는 법 없이 연습과 게임에 전념하며 단시간 내에 많은 발전을 이뤄냈다. 노력하고 발전하는 그녀들을 보면서 어머니의 힘을 느끼곤 했다. 수많은 경쟁 속에서 톱 모델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을 자연스레 알게 됐다. 지지 않으려는 그녀들의 마음이 매번 나를 감동시켰다.”     

 

슈트 발이 모델 수준인데다 가짓수도 상당히 많다.

“옷장에 옷이 한 가득인데도 욕심 나는 게 있으면 그냥 못 지나치고 반드시 구입하게 된다. 물론 집사람이 늘 시원하게 카드로 결제해 주니 나는 전형적인 ‘와카남(와이프 카드 쓰는 남자)’인 셈이다. 아내는 매우 검소한 편이며 결혼 전엔 금융권에서 일을 해 경제관념 또한 뚜렷한 사람이다. 그러나 지난 15년 동안 씀씀이가 비교적 헤픈 내게 아무런 불평도 잔소리도 하지 않는다. 감독직의 과도한 스트레스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돈 쓰는 일’이라 여기는 듯싶다. 그러나 나 또한 가족들과 아웃렛에 가는 걸 유일한 낙으로 여기는 서민의 표본이다. 과일 장수 아들이 가면 어딜 가고 쓰면 얼마나 쓰겠나.” 


사람 만나는 일을 좋아하는 만큼 혼자서 보내는 시간도 매우 좋아한다고 들었다.

“혼자서 커피를 마신다거나 술을 마시는 건 내 적성에 맞는 일이 아니지만 홀로 무작정 걷는 건 꽤 즐겨 한다. 감독을 하게 되면서 생긴 습관인 것 같다. 늘 선수단에 둘러싸여 지내는 터라 잠시라도 혼자 서성이지 않으면 두통과 체증이 나곤 했다. 한 시간, 한 시간 반쯤 걸으면 일정 생각이 정리가 돼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내릴 수 있어 즐겨 활용했다. 유능한 감독은 누구를 기용하느냐는 말판 싸움에 능해야 하는데 그 용병술을 걸으면서 익힌 셈이다.” 


다시 그라운드의 감독으로 나서는 꿈이 실현된다면 어떻게 달라지고 싶나.

“감독은 참 외로운 존재다. 모든 시작을 선언해야 하고 모든 마지막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선수단과 함께하겠다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있었다면 그렇게 무겁고 어두운 존재로 지내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싶다. 모든 일을 물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놔둘 필요가 있다. 한낮엔 바다가 파랗지만 밤이 되면 바다는 칠흑처럼 검어진다. 그건 하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예전의 나는 그걸 네 힘으로 바꿔보려고 발악을 해댔지만 그건 선수들에게 내 한계만을 인식시키는 히스테리에 불과했다. 이제 더는 독수리 발톱을 세워 선수들을 몰아세우는 짓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지시해서 기계처럼 만들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플레이를 하도록 지켜봐 주고 그들이 힘들 때 위로와 깨달음이 될 만한 말을 들려주는 게 내 몫이다. 지도자는 갑이 아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가 진정한 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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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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