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종혁 인터뷰

이종혁의 산뜻한 꽃중년 일기

글 : 최보윤 조선일보 기자  |   사진 : 이신영

배우 이종혁의 차갑고 날렵한 인상은 중년에 접어들며 확연히 유해지고 부드러워졌다. 그러나 그의 내면을 잘 알고 있는 이들은 그가 안광을 빛내며 완벽한 악역을 거듭할 무렵에도 정과 의리가 전부라고 외치는 다감하고 유쾌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한다. 그런 본성과 속내가 드러나는 드라마 캐릭터에 이어 그의 진면모를 확연히 체감하게 하는 TV 예능으로 그는 요즘 가장 화려하고 다이내믹한 꽃중년의 시대를 열고 있다.

wellbeing_202111_10_1.jpg

 

맛깔나는 ‘큰 형님’ 개그

 

“제가 감히 허영만 선생님의 위명(威名)에 도전해 <백반기행>을 입에 올린다는 건 말이 안 되고요, <이종혁의 기행적 기행(奇行的紀行)>정도면 어떨까요? 골목에서 온갖 희한한 행동을 펼치는 거죠. 하하하.” 당장에라도 골목에 나가 뭐라도 보여줄 기세였다. 

 

올 초 출연했던 TV조선 <허영만의 백반기행>에서 이종혁은 너스레의 황제였다. “그만두실 때 연락 좀 주세요. 제 프로그램에서 선생님을 게스트로 모실게요”라고 말해 허영만 화백의 단전으로부터 올라오는 웃음을 유도했던 그다. 

 

최근 시즌 1을 마친, 디스커버리 채널 코리아와 채널 IHQ 예능 프로그램 <마시는 녀석들>에서 ‘큰 형님’이자 ‘부장님 개그’로 인기를 끈 이종혁은 요즘 가장 바쁜 중년 스타 중 한 명이다. <마시는 녀석들>은 ‘맏형’ 이종혁을 비롯해 코미디언 장동민, 슈퍼주니어 규현, 골든차일드 이장준 등이 ‘안주 맛집’을 찾아다니는 프로그램. 각각 맛깔나게 풀어내는 사람 이야기와 술 해석 솜씨가 시청자들에게 화제다.  

 

KBS <경찰수업>, tvN <더 로드: 1의 비극> 등 정극에선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모습으로, 각종 예능에선 엉뚱하고 능청스러운 입담으로 시청자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2004)의 잔혹하고 야비한 선도부장 차종훈과 드라마 <추노>(2010)의 거칠고 비정한 황철웅 등을 통해 ‘이종혁이 악역으로 등장하면 그 작품은 100% 흥행’이라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부캐’라는 말이 유행하기 훨씬 전부터 ‘이조녁’이라는 별명으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다. 예능 <아빠 어디 가>(2013)에서 많은 인기를 끌던 당시 여섯 살 아들 준수의 발음 때문에 생긴 별명이다. 친근한 ‘동네 삼촌’ 같은 이미지도 그때 확장됐다.

 


wellbeing_202111_10_2.jpg

 

‘믿을 맨’의 버팀목은 단연 ‘아버지’

 

연극학교를 졸업하고 혜화동 무대를 전전하던 무명 시절에도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사람 좋은 이조녁’은 이때부터 차근차근 다져지기 시작했다. 오늘 들으면 하루 지나 내일 웃게 된다는 ‘이조녁식 개그’도 하나둘 쌓여갔다. 김을 먹고 ‘기물파손(김을파손)죄’라고 하거나 셀러리 안주를 보면서 ‘우린 샐러리맨이니 여기에 만족하자’고 하는 식이다. 젊은 세대와 술자리에선 ‘지갑은 열고 입은 닫아야 한다’는데 이종혁식 유머만큼은 예외다. 2030세대에서 ‘이조녁 개그’ 추종자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고, ‘면스플레인(면+익스플레인·냉면은 이렇게 먹으라 설명하는 것)’조차도 그의 설명 방식에는 “이종혁이니 괜찮다”고 댓글이 달린다.

 

“그 방식이 제일 맛있으니 그런 말이 있는가 보죠. 근데 제 아들들(탁수·준수)한테 냉면에 겨자·식초 넣으라고 해도 절대 안 넣던데요?(웃음)”

 

친구 같고, 형 같은 아빠. 곁에 두고 싶은 형님, 의지할 수 있는 ‘믿을 맨’의 이종혁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 이종혁 앞엔 언제나 그를 믿고 응원해줬던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도 약주를 매우 좋아하셨는데 평생을 신문사에서 일하셨죠. 지금도 아버지의 일터에서 맡았던 잉크 냄새가 진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촤르르르 하며 신문 찍혀 나오는 소리 들어보셨어요? 33년 근속하고 정년 퇴임하셨죠. 어렸을 때 아버지 회사에 구경 갔던 기억이 나요. 흑백부에서 컬러부로 바뀌셨다며 명함을 자랑하셨어요. 요즘은 그런 거 잘 모르시죠?”

 

시청자들이 그를 ‘준수 아빠’로 부르는 동안 그는 어느새 자신만의 타임머신을 타고 준수 나이 때 시절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준 사랑은 그렇게 대를 잇는다. 이종혁의 부친은 신문이 흑백 인쇄에서 컬러 인쇄로 넘어가는 역사적인 시간을 이끈 분이시란다. 아버지의 회사를 마냥 신기하게 생각하던 어린 아들을 위해 부친은 짬을 내 회사 곳곳을 돌며 제작 시스템을 보여주기도 했단다. 동료들과 술 한잔 거하게 하시고는 술기운을 빌려 “우리 아들 최고”라고 항상 격려했다.

 

그 이후 그의 인생 사전에 ‘절제’가 하나 더 붙었다고 했다.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기도 했다. 음식이든, 술이든, 즐기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조절하는 것이다. 아버지가 되어 보니, 자신을 마냥 이해해 주셨던 아버지가 실제론 애타게 기다렸던 마음을 넉넉한 웃음으로 대신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 행동은 <아빠 어디 가> 속 ‘이조녁’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wellbeing_202111_10_3.jpg
(사진 좌측부터) 1 야구에도 일가견을 갖고 있는 그는 LG 트윈스의 열렬한 팬이다. LG 선수들도 그의 야구 감각과 근사한 시구 솜씨를 인정한다고. 2 애주가들에게 인기 있는 ‘안주 맛집’을 찾아가는 디스커버리 예능 프로그램 <마시는 녀석들>의 공식 포스터. 이종혁은 ‘큰 형님 몽타주’와 ‘부장님 개그’를 선보이며 유쾌한 술꾼의 면모를 보여준다.

 

어디에나 잘 섞이는 순하고 착한 종혁

 

탤런트 김지영은 그에게 “물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디에나 잘 섞이고 순수하고 착하다는 뜻이었다. 맑고 투명한 그의 성품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한 게 있을까. 그래서인지 그는 물과 친한 듯하다. 술만 가까운 게 아니다. 스쿠버다이버 자격증도 보유했다. 얼마 전 예능 <해방타운>에서 공개된 그의 스쿠버다이빙 솜씨는 가히 프로 수준이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던 그였고, 여전히 어지간한 거리는 걷고 뛴다. 운동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는 “성격적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낙천적인가”라는 말을 되짚은 답이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한테 들은 말이 생각난다”면서 덧붙였다. “초등학생 때던가, 비가 억수로 오는 날, 왜 빨리 안 오고 걷느냐고 엄마가 다그치시는 거예요. 그때 내가 ‘빨리 가면 앞의 비까지 다 맞는데 왜 미리 가느냐. 내가 속도 맞춰 갈 테니 걱정하지 마라’고 했다더라고요.” 

 

속옷까지 젖을 정도로 폭우가 쏟아질 때 그는 “비를 빨리 맞으나 늦게 맞으나 어차피 맞을 일”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하잖아요.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고. 다들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밥 한끼 제대로 못 먹던 시절도 있었을 것이고 남한테 말하기 어려운 수모도 겪었을 것이고, 어떻게 견디고 이겨내는지의 차이일 거라고 생각해요.”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스토리
  • 카카오톡
  •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1년 11월호

    이번달 인기기사 TOP3

    이번달 전체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