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경순

연륜과 와일드함으로 여린 심장을 감추며 연극무대로 돌아온 그녀

글 : 이일섭 조선뉴스프레스 기자  |   사진 : 이태경

배우 정경순이 연극 <앙상블>의 열연으로 스마트하고 와일드한 60세를 증명해 보이고 있다. 그녀가 전하는 건강한 삶의 진실은 무얼까? 어떻게 하면 늙지 않을까를 고민하기보다는 나이 들수록 어떻게 하면 더 ‘나 자신’이 될 수 있을까를 추구하는 담백하고 간결한 그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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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면조가 우는 듯 걱실걱실한 음성 

 

정경순의 목소리엔 격정激情과 다정多情이 섞여 있다. 낮으면서도 크고 거침없는 음성으로 좌중을 압도하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그녀의 삶에 주저나 후회는 없을 듯싶다. 그러나 그녀를 오래도록 지켜본 사람들은 그녀가 매우 여린 심성의 소유자라고 얘기한다. 경쾌하고 괄괄한 말투로 쏟아내는 시원스런 입담과 강한 개성의 이면엔 조심스럽고 예민한 인간 정경순의 자아가 숨어 있는 것이다. 

 

그녀는 요즘 24년 만에 돌아온 홍대 인근의 산울림소극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매일 밤 화실과 카페, 디자인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와우산길에 면한 오래된 극장에서 연극 <앙상블>을 공연하며 한층 내공이 실린 연기력을 내보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나이가 들수록 연기가 어렵게 느껴지고 공연을 거듭할수록 더 긴장된다고 얘기한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끓이고 양배추를 써는 동작을 1m 거리의 관객이 알아챌까 봐 몹시 불안하다. 

 

SBS 아침 드라마 <나도 엄마야>의 ‘기숙’, MBC 주말 드라마 <도둑놈 도둑님>의 ‘하경’, 그리고 KBS 주말 드라마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의 ‘경자’ 등 최근 그녀의 이력이 TV 드라마의 명품 조연으로 굳어지고 있지만 그녀의 데뷔와 출신 성분은 연극무대로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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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창립 70주년 기념작 <만선>의 홍보용 이미지(2021년 9월 공연). 정경순은 구포댁으로 분해 한국 리얼리즘 연극의 대표작을 더욱 생생하게 형상화했다.

 

예순의 그녀, 그러나 은은한 젊음이 묻어나는 배우 

 

에스프레소 향기가 피어나는 카페보다 파란 하늘을 이고 있는 극장의 옥상을 더 좋아했던 정경순도 이제 60세의 후반생이 됐다. 하루에 여섯 잔쯤 마시던 카푸치노는 수면장애 탓에 미네랄워터로 대체됐으며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그녀의 오랜 철학도 ‘몸은 정신을 지배한다’로 변경될 만큼 ‘나이 듦’은 그녀의 생활과 생각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세 자매>의 스무 살 ‘이리나’를 시작으로 의 서른여섯 살 ‘제시’, 그리고 제시와 비슷한 연령대인 <태백산맥>의 ‘죽산댁’과 <창>의 ‘미숙’ 이후로 그녀의 이름을 대신할 만한 커다란 배역을 만나지 못했다. 중장년에 이른 인간 정경순의 배우적 딜레마다. 물론 좁아지는 운신의 폭에 위축될 그녀도 아니고 윤여정, 오영수만큼의 대기만성 인자가 철철 넘친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그들보다 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는 아직은 젊은 편에 속하는 배우가 아닌가. 

 

연극 <앙상블>은 2017년 프랑스 몰리에르상 수상작이다. 지적 장애를 가진 아들을 돌보는 엄마 이자벨라 역을 맡은 그녀에게 집 나갔던 딸 산드라가 10년 만에 나타나면서 갈등은 극에 달하게 된다. 정상인이 아닌 오빠가 있을 곳은 여기가 아니라 시설이라며 현실을 인정하라는 딸에게 그녀는 이렇게 대응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누가 결정하는데? 가족을 창피하게 생각하는 건 정상이니?”라며 아들의 장애에 대한 비밀을 털어놓게 된다. 자신 때문에 장애를 얻게 된 아들에 대한 미안함과 애정이 딸을 외면하게 하며 결국엔 모자母子 관계 외엔 인정하지 않는 냉담한 인물로 변화되고 만다. 그러나 그 절박하고 동물적인 사랑의 이면에 숨어 있는 외로움과 고통을 정경순은 깊고 오묘하게 표현해 낸다. 그녀가 보여준 배역 중 가장 진실되고 믿음이 가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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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산울림 창단 53주년 기념 무대인 연극 <앙상블>의 캐릭터 컷. 가족 구성원이 지적 장애를 겪고 있을 때 벌어지는 갈등과 애증의 양상을 밀도 있게 다루며 진정한 가족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한다. 5월 8일까지 서울 산울림소극장에서 공연한다.

 

24년 만에 산울림의 무대에 서게 됐다. 어떤 감회가 드나.

“봄이 완연한 날인데도 지하 깊숙이 있는 무대에 들어서면 차고 음습한 공기가 싸하게 다가온다. 그 옛날에도 이런 느낌을 받았는데 이곳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구나 싶다. 하지만 나는 체질적으로 ‘좋았던 옛날’이니 ‘각박한 오늘’이니 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오늘 지금이다. 그 시절에 자주 갔던 밥집이 커피를 파는 카페로 바뀌어 있는 것에 대해 나는 아무런 아쉬움이 없다. 즐겨 먹던 쌈밥 대신 진한 블랙커피로 때우면 되는 것 아닌가. 그런 감정 소모는 무대에서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왜 배우가 되기를 결심했나.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었으니까. 스물두 살 그 무렵엔 급하고 격한 내 성격을 감당할 수 있는 게 무대뿐이었다. 런던 연극학교의 학비를 선뜻 내준 엄마의 지원도 한몫했지만 그 후로 나는 무대의 균형을 부수는 배역 만들기를 천직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연기를 하는 게 두렵고 무대에 서는 일이 긴장이 돼 병을 앓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중압감과 위기의식이 내 삶의 이유가 되고 말았다.” 


배우가 된 것에 후회한 적은 없나.

“후회 같은 건 하지 않는다. 그건 패배한 자의 변명일 뿐이니까. 다만 오지 않는 배역을 기다리는 일을 외로워한 적은 있다. 제시간에 오지 않는 관객을 미워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런 외로움을 이겨내느라 지금의 남편을 만날 수 있었으니 그 답답함은 오히려 약이 된 셈이다. 다행스러운 건 나의 재능을 알아봐 준 많은 스승의 인도로 좋은 작품을 할 수 있었고 그분들에게 예술가의 품성과 시각을 배울 수 있어서 행복했다.” 


코로나19를 어떻게 극복했나.

“극복하고 말고 할 게 뭐 있나. 확진자가 돼서 며칠 연습에 빠지고 집에서 된통 앓아야 했다. 후배들은 일주일 만에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완벽한 배우가 되어 돌아왔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아직은 회복 중인 환자라는 생각으로 연습과 공연에 임했으니까. 무대에선 날아다닐 수도 있다고 믿었는데 코로나19, 오미크론 앞에선 배우도 뭐도 아닌 60세 고위험군이 딱 맞는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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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회복이 되기를 기다리는 동안 무슨 생각을 했나.

“이러다 집에 갇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오십 중반을 넘기자 나를 찾는 전화가 뜸해졌다. 올 것이 왔구나 했지만 좀 암담하기까지 했다. 남에게 먼저 다가가는 요령도 없는데 무얼 해야 하나 싶었지만 이런 일로 자신감까지 잃어선 안 된다고 나를 나무라고 보듬었다. 물론 <만선>에 이어 <앙상블>까지 나를 인정해 주는 무대가 이어져서 슬럼프를 넘길 수 있었다.” 


이제 60세, 무대에 서는 일이 예전만큼 순조롭진 않을 것 같다.

“배역에 대한 이해, 대사 외우기, 상대 배우와의 호흡 유지 등등 배우로서의 자질엔 변함이 없다. 다만 좋은 연기를 하기 위한 컨디션 유지에 어려움이 많아졌다. 솔직히 공연이 있는 날은 아침부터 머리가 무겁고 어깨가 뻐근하다. 이런 피로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요가와 명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다. 유튜브 영상을 보며 하는 스트레칭도 많은 도움이 된다. 10분 정도 목과 어깨, 허리를 움직이다 보면 짓눌려 있던 뼈와 살이 제자리로 돌아와 편안해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주 언급하거나 읊조리는 대사에는 어떤 게 있나.

“그런 건 없다. 작품이 끝나고 나면 배역에 대한 모든 기억을 지워내야 다음 작품에 임할 수 있다. 그러나 내겐 명작의 대사보다 더 소중한 엄마의 조언이 하나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라는 명언인데 엄마는 내게 그 말을 자주 하며 더 많은 꿈을 갖기를 바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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