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① 이태성

그림 그리는 배우, 이태성의 깊은 마음속

글 : 임언영 여성조선 기자  |   사진 : 안규림

본인의 작품에 둘러싸인 이태성은 행복해 보였다. 나긋나긋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작품을 소개하는 멘트 사이에는 ‘신남’이 묻어 있었다. 작업실에 푹 파묻혀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작업한 에피소드를 들으니 귀여운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그림에 푹 빠진 배우, 이태성을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논현동 아트인사이드 갤러리에서 만났다.

배우와 화가
서로 다른 에너지를 심는 작업


배우 이태성은 매일 그림을 그린다. 하루 열 시간에서 열두 시간 정도. 드라마 촬영 등 일정이 있는 날은 서너 시간 정도로 시간이 줄어들지만 매일 운동을 하듯 그림 그리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 초등학교 시절 ‘불조심 포스터 그리기 대회’ 이후 한 번도 그림을 그려본 적이 없었다는 그는 몇 년 전부터 그림에 푹 빠져 지냈다. 


몇 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 등으로 작품을 선보이며 호평을 받은 그는 본격적인 작업을 위해 개인 작업실까지 꾸렸다. 요란하지 않게 작가로서의 행보를 묵묵히 이어가고 있는 그가 개인전을 계기로 본인의 작품들과 함께 봄날의 외출을 했다. 


지난 4월 5일부터 논현동 아트인사이드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개인전의 제목은 . 매일 시간과 공을 들여 완성한 작품들 중 지금 이태성의 내면과 가장 닿아 있는 작품 40여 점을 직접 골랐다. 수많은 덧칠이 만들어낸 그의 작업은 단정하면서도 경쾌하고 컬러풀하다. 지난해 국내외 전시를 통해 작가로서 주목받은 이태성은 부산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GV티켓이 매진되는 등 화제를 모았는데, 이번 서울 전시 역시 관람객의 호평과 관심을 받는 중이다. 


미술 전공자도 아닌 이태성이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전업 작가 수준으로 그림을 그려내는 이유는 간단하다. 즐겁기 때문이다. 재료를 연구하고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며 배우는 과정에서 작가로서의 쾌감을 느낀다. 그림이라는 수단을 통해 온전한 자유를 만나는 과정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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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사계–피어나는 속삭임’
사람들 저마다가 갖고 있는 고유한 빛을 캔버스 위에 텍스처로 표현한 작품.

 

단정한 블루를 예상했는데, 실제로 보니 컬러가 다양하고 경쾌하네요.

“이번 전시 주제를 <이너 모노로그>로 잡고 나서 사실 여러 가지 편견을 깨뜨리고 싶었어요. 이번 전시는 색감이 다양해요. 제가 블루를 좋아해서 블루 작업을 많이 했는데, 그렇다고 계속 블루 작업만 해야 하느냐는 스스로 의문이 들었거든요. 그런 일종의 편견을 깨뜨리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다양한 색과 재료의 작품을 내놓게 됐어요.” 


이번 개인전이 처음이 아니시죠. 이제 미술계에서도 점점 존재감이 드러나는 건가요?

“아직 맨땅에 헤딩이에요.(웃음) 제가 다 찾아다닌 거예요. 직접 작품 포트폴리오 만들어서 갤러리를 찾아다니고 작품 설명을 해드렸어요. 전시를 하면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연예인 그림에 대한 편견에 상처가 되는 이야기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다행히 그런 느낌은 좀 사라진 것 같아요.”  


그림은 언제부터 그리기 시작했나요.

“군대에서 시작했어요. 그땐 연기를 하고 싶은데 못하고, 친구들은 TV에 매일 나오고 있고. 에너지를 분출하고 싶은데 꺼낼 곳이 없어서 책을 많이 읽고 글을 썼어요. 행정병이라 몰래 컴퓨터를 켜서 에세이를 썼는데, 그것도 계속하다 보니 물리는 거예요. 4B 연필과 크로키북을 사서 혼자 끄적끄적 그렸어요. 흑백으로 그리다 보니 나중에는 색을 넣고 싶어서 색연필을 샀고요. 전역 이후에 물감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배우로서 그림을 그리는 것은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마다 자기 해석이 다양하잖아요. 어떤 분들은 연기한 걸 그림으로 비워낸다고 하시던데, 저는 새로운 에너지를 심는 것 같아요. 연기에서 쓰는 에너지와 그림에서 쓰는 에너지는 또 다르거든요. 내 안의 찌꺼기를 배설하는 창구가 아니라 제가 가진 에너지를 그림에 새롭게 심는 것 같아요.”


반복해서 듣는 질문이겠지만, 연기를 하는 것과 그림을 그리는 것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요.

“예술은 자유로움에 대한 이야기인데, 연기는 100% 자유롭지는 못하다고 생각해요. 연기는 작가, 감독이 만들어주는 이야기잖아요. 배우는 감독이 주는 디렉션에 맞춰서 사용되는 존재고요. 또 동료 배우들과 앙상블이 필요한 작업이기도 해서 저 혼자 자유로울 수는 없어요. 그림을 그릴 때는 제가 모든 것을 관장하는 권력자, 창조자가 돼요. 물감을 선택하는 것에서 마지막 액자 작업을 할 때까지, 모든 과정에 나의 선택이 존재하는데 그 누구도 관여하지 않아요. 온전한 자유를 만나는 작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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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림을 통해 나누고 싶은 이태성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하는 작업의 목적은, 중첩되는 색들이 서로를 보완해가는 과정들 속에서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실제로 저라는 존재가 느꼈던 거예요. 한승(아들)이라는 존재가 생기고 그 과정에서 가족들 사이에서 느낀 감정들, 동료 배우들 속에서 내가 변화하는 모습들, 다른 사람들로부터 보완해가는 나의 단점들 등등 내 위에 얹힌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가 중첩되면서 나라는 존재가 더 빛을 낼 수 있었어요. 작품을 보시면서 본인을 둘러싼 사람들에 대한 생각들, 관계에 대한 생각들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작업하면서 가장 기쁨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작가로서 붓을 놓는 순간. 나랑 얘(작품)랑 이야기가 끝났다는 그 접점의 순간이 좋요. 어떤 작품은 두 달 석 달을 해도 안 끝나거든요. 터치도 색감도 빛도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해야 하는데, 어느 순간 마감 처리를 해요. 그때 희열이 있어요. 저는 내 손에서 붓을 놓는 순간을 만나려고 붓을 들어요. 그게 추상의 매력인 것 같기도 해요. 캔버스를 꽉 채우든 점 하나를 찍든, 내가 끝내야 끝나는 거죠.” 


작가로서 궁극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누언가요. 

“배우를 평생의 업으로 생각했던 것처럼 작가로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는 거예요. 저는 목표를 60대 정도로 잡았거든요. 연기도 20년 정도 하니까 편해지더라고요. 현장도 관계도, 대본을 보는 눈과 연기와 나를 분리하는 것도 그 정도 시간을 하니까 편해지는 것 같아서 그림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요. 작가로서 앞으로 20년 후의 제 작품을 되게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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