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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보다 귀한 동해 섭, 참치 뺨치는 서·남해 삼치

글 : 손수원 월간 산 기자  |   사진 : 조선일보DB

지금은 낯선 풍경이 되었지만, 과거엔 이렇게 쌀쌀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퇴근길에 단골 선술집이나 포장마차를 들르곤 했다. 자리에 앉으면 기본 안주로 나오는 뜨끈한 홍합탕 한 그릇은 언 몸은 물론, 정신없이 하루를 사느라 차가워진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서민의 희로애락을 달래주는 홍합과 삼치를 만나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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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홍합은 흔하게 요리에 사용되는 재료가 되었다. 사시사철 흔하게 먹는 것이 홍합이라지만 옛날에는 전복, 해삼보다 더 귀한 것이 홍합이었다. 물론 여기에서 말하는 홍합은 우리나라 토종 홍합, ‘섭’이다.
 
피부 매끄럽게 해주는 ‘동해부인’ 섭

요즘 우리가 흔하게 먹는 홍합은 사실 홍합이 아니다. 그것들은 외국 배가 왕래하면서 따라 들어온 외래종 진주담치(지중해담치)다. 우리나라에서 나는 토종 홍합은 ‘참담치’다. 영남 지방에서는 합자·열합이라 부르고, 강원도 쪽에서는 섭이라 부른다.

중국에서는 섭을 두고 ‘동해부인(東海夫人)’이라고 불렀는데, 피부를 매끄럽고 윤기 있게 가꿔주는 효능이 있어 그렇다. 홍합은 속살의 오묘한 생김새 때문에 여성을 빗대어 표현하는 은유적 단어로 쓰이기도 했다.

‘홍합’은 속살이 붉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붉은 속살을 가진 홍합은 암컷이고 흰 살을 가진 것은 수컷이다. 맛은 암컷이 더 좋다. 특이한 것은 홍합은 수컷으로 태어나 암컷으로 ‘성 전환’을 한다는 것이다.

자연산 섭이 10년 넘게 자라면 어른 손바닥만 해진다. 겨우 엄지 손가락만 한 진주담치와는 비교할 수 없는 크기다.

크기도 크기지만 속살의 씨알도 비교불가다. 껍데기도 전복처럼 단단하다. 섭은 양식이 되지 않아 해녀가 깊은 바닷속에 들어가 따온다. 전복이 양식이 되는 것을 생각하면 전복보다 오히려 몸값이 귀한 셈이다. 

섭은 우리나라 바다 전역에서 잡히지만 수온이 차고 갯벌이 없는 동해안의 것을 최고로 친다. 특히 바닷속 5m 이내에서 사는 섭을 최고로 친다. 이 정도 깊이에서 사는 섭은 파도가 치면서 발생시키는 기포를 맞고 자라는 덕분에 속살이 쫄깃하면서도 더 부드럽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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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나 장칼국수·홍합밥으로 별미

섭은 날이 추워질수록 맛있다. 겨울철 동해 속초나 양양 등 영동 지방과 울릉도 등 바다를 앞둔 지역에서는 자연산 섭에 칼칼한 고추장을 풀어 부추, 미나리 등과 함께 넣어 섭죽을 만들어 먹는다. 강이 있는 내륙 지역에서 먹는 어죽과 비슷한 섭죽은 섭의 영양분이 고스란히 우러나 보양식은 물론, 칼칼한 해장국으로도 그만이다. 섭장칼국수는 홍합을 넣은 국물에 칼국수를 삶고 고추장이나 된장을 풀어 걸쭉하고 얼큰하게 끓인 별미다.

울릉도에선 섭을 잘게 썰어 홍합밥을 지어 먹는다. 멥쌀과 찹쌀을 절반씩 섞어 물에 불린 다음 홍합살을 잘라 넣고 간장과 들기름을 두른 후 압력솥으로 30분 이상 쪄낸다. 이렇게 밥을 지어 양념간장으로 간을 하고 김가루를 뿌려 비벼 먹으면 고슬고슬한 밥알과 쫄깃한 홍합살이 입안에서 맛있게 씹힌다.

진주담치가 흔하다 해서 섭에 비해 맛이 없는 건 아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등 지중해 연안에서는 진주담치를 고급 해물요리에 많이 쓴다. 프랑스식 홍합찜은 진한 크림소스를 사용하고, 이탈리아식 홍합찜은 칼칼하게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홍합 요리로 가장 유명한 벨기에는 여러 가지 채소와 화이트와인을 사용해 홍합찜을 만든다. 와인은 홍합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하며 깊은 맛을 더욱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치즈나 크림을 넣어 홍합의 풍미를 살리면 고급 레스토랑 요리가 되기도 한다.

홍합은 해삼과 궁합이 잘 맞는다. 해삼은 ‘바다의 인삼’이라 불리는데, 개성 지방에서는 ‘홍해삼’이란 요리가 있었다. 이 요리는 홍합과 해삼을 같이 넣어 조리하는 이바지 음식이다. 홍합이 ‘동해여인’이라면 해삼은 해남자(海男子), 즉 ‘바다 사나이’다. 이렇게 홍합은 여성, 해삼은 남성을 상징해 결혼식 폐백상과 잔칫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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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차진 육질… 사연 많은 삼치

삼치도 늦가을부터가 제철이다. 삼치는 고등엇과 생선이다. 몸길이는 1m 전후인데 ‘망어(亡魚)’ 또는 ‘마교(馬鮫)’라 부르기도 한다. 남해 지방에서는 작은 삼치를 ‘고시’라고도 부른다.

삼치라는 이름이 붙은 연유가 재미있다. 조선 중기에 새로 부임한 전라도 관찰사가 관내 초도순시를 하던 중 한 어촌 마을에 들렀다. 고을 원님은 그곳에서 잡힌 이름 없는 생선회를 관찰사에게 대접했고 관찰사는 그 맛에 푹 빠졌다.

관찰사는 자신만 이 맛있는 생선을 먹는 것이 임금에게 죄를 짓는 것 같아 그 생선을 한양의 임금에게 올려 보냈다. 며칠 지나 생선을 받은 임금이 맛을 봤지만 그 생선은 이미 상해 맛이 이상했다. 화가 난 임금은 관찰사를 파직시키고 말았다. 상을 받을 줄 알았던 관찰사는 파직 소식을 듣고 “이 생선 때문에 내가 망했으니 이 생선은 망할 놈의 생선이구나!” 하고 한탄했다. 이때부터 이 물고기는 ‘망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 ‘망어’가 뒤에 음이 변해 ‘마어’로 불리면서 한자어로 ‘삼 마(麻)’자에 ‘고기 어(魚)’자를 붙였다. 이는 다시 ‘麻’의 우리말 ‘삼’에 어류를 나타내는 접미사 ‘치’가 붙어 삼치가 되었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설’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다.

이름에 ‘망하다’란 뜻이 들어가니 사대부들은 삼치를 잘 먹지 않았고 관혼상제에도 올리지 않았다. 맛이 좋지만 고작 이름 때문에 천대받은 ‘비운의 생선’인 셈이다.

삼치는 4~5월에 산란을 하고 여름부터 살을 찌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10월부터 다음 해 1월까지 맛이 절정에 달한다. 삼치는 전남 완도, 고흥 외나로도 부근, 여수 거문도 바다에서 잡히는 것을 최고로 친다.

삼치는 일본인이 특히 좋아해 일제강점기에는 고흥 외나로도항을 삼치의 어업 전진기지로 삼기도 했다. 그 결과 이곳에는 전기와 수도설비가 들어서고 파시가 열리기도 했다. 1960~70년대는 외나로도항 삼치가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던 시기로 삼치를 잡는 배들만 200여 척이나 되었다. 하지만 잡은 삼치는 전량 일본에 수출됐으며, 1980년대까지 이어졌다.

삼치는 고등어와 마찬가지로 신선할 때는 부드럽고 차진 육질과 맛을 자랑하지만 성질이 급해 잡히자마자 이내 죽어버린다. 그러다 보니 내륙 지방에서는 주로 구워 먹거나 조려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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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도 먹지만 구이나 조림도 맛있어

일반적으로 우리가 먹는 삼치는 30~50cm 정도인데, 나로도에서는 삼치 축에도 못 끼는 작은 씨알이다. 1kg이 넘어야 그나마 삼치라 불리고, 3kg이 넘어야 제대로 된 삼치로 인정받는다. 5kg 정도 되면 ‘중치’ 정도로 치고 1m가 넘으면 대삼치라고 인정해 준다.  

굵은 소금 솔솔 뿌려 연탄불에 구운 삼치구이는 막걸리 안주로 최고다. 기름기가 많아 촉촉한 고등어와 달리 삼치구이는 조금 퍽퍽한 느낌이지만 담백한 맛이 끝내준다. 고추장 양념을 발라 구우면 소주 안주까지 커버한다. 물론 밥반찬으로도 삼치구이만 한 게 없다.

동인천역 앞에는 삼치골목이 형성되어 있다. 1980년대 후반에 한두 집이 생겨나기 시작해 지금은 10여 곳의 삼치식당이 자리 잡고 있다. 40여 년 전통을 자랑하는 곳도, 후발주자로 들어온 식당도 있다. 삼치구이는 1만 원 내외의 가격으로 먹을 수 있어 주머니 가벼운 대학생이나 사회초년생은 물론, 옛 시절을 떠올리는 중장년층에게도 인기가 좋다.


경주·포항 등에선 대삼치 낚시 시즌

삼치는 손맛 좋은 낚시 어종으로도 인기가 좋다. 삼치 중에서도 크기가 큰 대삼치는 9월 초부터 동해 경주 앞바다에서 시즌이 시작되어 10월경에는 포항 앞바다에서 절정을 이루고 11월경에는 다시 경주로 이어진다. 작은 삼치들은 남해와 서해에서도 잡을 수 있다.

이렇게 낚시로 잡은 대삼치는 잡자마자 바로 회를 떠 먹을 수 있으며 그 맛은 참치에 버금간다고 한다. 삼치는 등 푸른 생선 중에서 비린내가 가장 적은 생선이라 남녀노소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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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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