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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은 설렁탕 배달시켜 먹어…백성의 보양식 수구레국밥

황소가 국물에 빠진 날 “한 그릇 더!”

글 : 손수원 월간 산 기자  |   사진 : C영상미디어, 셔터스톡

“그 돈으로 뜨끈한 국밥 한 그릇 사 먹고 말지”라는 말이 유행이다. 이 유행어는 모든 경제적 개념을 국밥과 연관시킨다. “5만 원짜리 스테이크 사 먹을 거면 그 돈으로 뜨끈한 국밥 다섯 그릇 사 먹고 말지”하는 식이다. 어쩌다 인기를 끈 인터넷 ‘밈(meme,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특정 콘텐츠를 대중이 따라 하고 놀이로 즐기는 현상)’이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다. 단돈 몇 천원에 뜨끈한 국물에 고기, 채소, 밑반찬, 밥까지 든든하게 먹을 수 있으니 ‘가성비’에 있어서 이만한 음식이 또 어디 있으랴.
날이 추워지면 뜨끈한 설렁탕 한 그릇이 더욱 생각난다. 주문하면 밥과 고기를 넣고 뜨거운 사골국물을 토렴해 낸다.
조선시대에는 소 도축 금지

2021년은 소의 해다. 소가 어떤 가축인가. 살아서는 우직하게 사람을 위해 농사일을 하고, 사람의 놀이를 위해 소싸움도 한다. 때론 첫째 자식 대학등록금 마련 수단이 되었으며, 재산 증식의 목돈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죽어서는 어떤가. 배고픈 사람을 위해 뼈와 살을 내어 음식이 된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인간과 소의, 우리 민족과 소의 끈끈한 인연이거늘.

소를 재료로 하는 음식은 수없이 많다. 그중에서도 우리 민족은 국밥을 즐겨먹었다. 살코기로는 소고기국밥을, 뼈를 고아서는 설렁탕을, 머리로는 소머리국밥을, 내장으로는 내장탕을 끓여 먹었다. 그뿐인가 꼬리로는 꼬리곰탕, 다리로는 우족탕·도가니탕을, 가죽으로는 수구레국밥을 만들어 먹었다. 이 정도면 우리 민족의 ‘소울(Soul) 푸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소고기로 만든 국밥을 제대로 먹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불교가 국교인 고려시대엔 육식이 금지되었다. 고려 말, 원나라가 일본 침략을 위해 고려를 병참지로 정하면서 백성들은 소고기 맛을 알게 되었고, 조선시대 들어서 소 도축이 성행했다.

농경사회인 조선에서 식육으로 인해 소의 수가 너무 감소하자 나라에선 ‘우금령(牛禁令)’을 내려 소 도축을 금했다. 소고기는 왕이나 양반들이나 먹지 백성들은 거의 먹지 못했다.

다만 농사를 짓다 늙거나 다친 소의 도축은 합법적으로 허용되었다. 하지만 이런 소의 고기는 질기고 맛이 없었기에 이 ‘하(下)급’ 소고기를 맛있게 조리하는 방법을 고민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소고기를 함부로 먹지 못하게 해서 소고기 음식이 발달한 것이다.

조선 말에 접어들어 소를 잡고 고기를 파는 ‘현방(懸房, 푸줏간)’이 생겨 일반인도 소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1893년 일본인 혼마 규스케가 조선을 정탐하고 쓴 <조선잡기>를 보면 ‘조선인들은 말고기를 먹지 않고 소고기를 아주 좋아한다’는 구절이 있다.

소고기로 만드는 음식은 정말 많지만 우리 민족은 특히 국밥으로 먹는 것을 즐겼다. 가장 유명한 것이 설렁탕이다. 한국인의 설렁탕 사랑은 남다르다. 1924년 발표된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날’에서 김 첨지의 아내가 그토록 먹고 싶어 했던 음식이 바로 설렁탕이다. 1929년 대중잡지 <별건곤> 9월호에는 ‘집에 갈 노잣돈이나 자기 마누라 치마 사줄 돈이라도 설렁탕을 먹지 않고선 견디지 못할 것이다’란 글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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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패스트푸드 설렁탕

설렁탕은 길거리에서 시작한 음식이다. 조선시대 소는 반드시 궁궐, 관청의 허가를 받아서 백정이 도축했다. 고기는 궁중과 관청에 납품되고 부산물은 백정이 도축 비용 대신 가져갔다. 설렁탕은 이 부산물로 만든 음식이다. 제대로 된 이름도 없었다. 그저 소고기를 끓여 만든 국, 즉 우탕(牛湯)이었다.

1894년, 갑오경장 이후 ‘백정’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난 그들 중 일부는 직접 설렁탕집을 차렸다. 1904년 종로에는 ‘이문옥(里門屋)’이라는 상호의 설렁탕집이 생겼다. 우리나라 최초의 설렁탕집이다. 이곳에서는 ‘설농탕’을 팔았는데, 이 음식은 대한제국시기와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최고의 ‘히트상품’이 된다.

지금의 ‘설렁탕’이란 이름이 붙게 된 것에 대해선 많은 설이 있다. 유력한 설은 몽골어 ‘슈루’에서 시작됐다는 것(1982, <한국식품문화사>)이다. 원나라 유목민이 만들어 먹던 고깃국 ‘슈루’가 고려에 들어왔고, 이것이 후에 설렁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슈루의 한자어 표기는 ‘공탕(空湯)’이라고 되어 있어 곰탕 또한 여기서 유래한 것이라고 추측한다.

또 한 가지는 조선시대 선농제(임금이 풍년을 기원하며 드리던 제사)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이라는 설이다. 제를 드리던 선농단에서 만들어 먹은 탕이어서 선농탕이라는 것인데, 과연 소의 도축을 금기시하던 조선시대에 이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역사서에서도 이런 기록을 찾을 수 없다. 마지막 설은 ‘이문옥’에서 만들어 팔던 ‘설농탕’에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설농탕은 ‘눈(雪)처럼 희고 진한(濃) 국물(湯)’이란 뜻이다.

설렁탕은 ‘원조 패스트푸드’다. 자리에 앉으면 탁자에 바로 깍두기가 놓이고 1분도 채 안 되어 탕이 든 뚝배기가 놓인다. 가격도 당시 냉면, 떡국보다 쌌다. 1930년대 들어 경성에만 100여 개의 설렁탕집이 생겼다.

설렁탕은 냉면과 더불어 대표족인 배달 음식이기도 했다. 갑오경장으로 신분제는 철폐되었지만 차별은 여전했다. 양반들은 ‘백정이 만든 음식’이라는 이유에서 설렁탕을 먹지 않았다. 하지만 그 맛을 언제까지나 피해갈 수 있겠는가. 한번 설렁탕 맛을 본 양반들은 또 다시 그걸 먹고 싶었으나 ‘체면’ 때문에 직접 식당에 가지는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배달시켜 먹었다. 때문에 당시 경성에 배달부만 300여 명에 달했다는 기록도 있다.

설렁탕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음식이 소머리국밥이다. 고기와 내장, 뼈를 함께 넣고 끓여 사골국물을 내는 것은 같다. 이 사골국물에 양지머리를 넣으면 설렁탕, 소머리고기를 넣으면 소머리국밥이다.

소머리국밥은 곤지암의 최미자 할머니가 원조다. 최 할머니는 1980년대 초 지금의 곤지암고등학교 인근에서 연탄불에 팔팔 끓인 소머리국밥을 팔았다. 탁자 몇 개 놓인 작은 밥집이었다. 그러던 것이 인근에 골프장이 하나둘 생기면서 손님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1987년에는 중부고속국도 곤지암나들목이 생기면서 손님이 더욱 많아졌다. 다른 소머리국밥 식당도 우후죽순 생겼다. 이후 인근 스키장 손님까지 더해지면서 곤지암은 명실상부 ‘소머리국밥 성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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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와 뼈를 넣고 푹 고은 사골 국물은 가난한 백성들의 영양보양식이었다.

 

소 한 마리에 2㎏, 귀한 수구레
수구레국밥은 아는 사람만 찾아 먹는 음식이다. 수구레는 소가죽과 살 사이에 있는 아교질 성분이다. ‘굳이 이것을 찾아먹어?’ 라는 질문을 할 정도로 양반은 거들떠보지도 않던 부위였다.

하지만 가난한 백성들이야 어디 그런가. 우시장에서 소라도 잡는 날이면 으레 부산물로 버려지는 수구레를 집으로 가지고 와 가마솥에 넣고 푹 끓여 먹었다. 이것도 고기라면 고기고 영양가도 살코기 못지않으니 가난한 자에게는 이만한 보양식이 따로 없었다.

1960년대 중반에는 외국에서 군화제조용으로 수입한 소가죽에 붙어 있는 수구레가 불법으로 유통되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 다행히 지금은 도축장에서 위생적으로 수구레를 채취해 일반 음식점으로 유통하니 믿고 먹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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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가죽에서 채취한수구레로 만든 국밥. 씹는 맛이 일품이다.
 
수구레는 지방이 거의 없고 콜라겐과 엘라스틴 성분으로 되어 있어 씹는 맛이 쫄깃쫄깃하고 맛도 담백하다. 그래서 주당들은 수구레를 아예 술국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고기 씹는 맛에 뜨끈한 국물로 속도 풀어 주니 이만한 안주도 없다. 수구레를 전문으로 내는 식당에서는 무침과 전골, 볶음으로도 만들어 낸다.

수구레국밥은 한 그릇에 7000~8000원으로 저렴하지만 사실 수구레는 소 한 마리에 2㎏ 정도밖에 안 나와 나름 ‘귀한’ 재료다. 손질은 물론, 요리하는 데에도 손이 많이 간다. 수구레는 센 불에 오랫동안 삶아야 하는데, 삶는 동안 기름기를 계속 걷어내야 하고, 세척과 손질도 계속해야 한다. 이렇게 수고를 하더라도 불의 세기와 삶는 시간을 잘 조절하지 못하면 질겨서 먹지 못하게 되므로 수구레는 오랜 경험이 있어야 제대로 된 음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

전국에 수구레국밥을 내는 식당이 많아졌다. 그중 창녕의 이방식당, 대구 현풍의 현대식당 등이 가장 유명한 수구레국밥집. 요즘은 대도시나 수도권에서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으며 체인점 형태로 영업하는 곳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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