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여행 - 서천

서천으로 떠나는 시간여행

글 : 박근희 조선일보 기자  |   사진 : C.영상미디어

철새들의 쉼터이자 조용한 생태 도시였던 서천이 요즘 시끌벅적하다. 지난 7월 26일 서천을 포함한 고창·신안·보성과 순천에 있는 ‘한국의 갯벌’이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되면서다. 특히 서울 및 수도권과 비교적 가까운 서천은 2011년 ‘한산모시짜기’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돼 갯벌까지 두 개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유행을 좇기보다 시나브로 지켜온 것이 훨씬 많은 ‘유산의 도시’ 서천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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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도’를 품은 비인 해변 바닷물이 밀려나가며 갯벌에 그려놓은 무늬가 선명하다.

 

서천 갯벌은 총 60여 ㎢로, 서면 월호리 월하성~송림리 장항읍 유부도 해안가 일원이다. 유산에 등재된 갯벌은 지역마다 생태적 특징이 있는데 서천의 경우 IUCN(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등급인 넓적부리도요 등 17종 포함 총 85종, 14만 8000마리 물새 방문지이자 서식지며 갯지렁이 등 181종의 저서동물, 갈대·천일사초·해홍나물·칠면초·갯잔디·갯쇠보리 등 염생식물이 공생하고 있어 해양·조류 생태계의 보고(寶庫)로 꼽힌다. 새만금 갯벌이 사라지고 금강하구에 남아 있는 유일한 하구 갯벌이기도 하다.

 


‘쌍도’ 주변 갯벌 체험, 

스카이워크 올라 갯벌 조망

 

전체 갯벌은 썰물(해수면이 가장 낮은 상황) 때 모습을 드러낸다. 썰물이 시작되자 마치 실크스카프가 스르르 벗겨지듯 바닷물이 밀려나갔다. 바닷물이 자리를 비운 갯벌은 조개의 숨구멍으로 가득했다. 갯지렁이와 망둥어, 엄지손톱만 한 게들이 바쁘게 펄 속으로 몸을 숨겼다. 펄이 드러나자 바닷새들이 주인 행세를 하며 날아들었다. 바다가 내어준 광활한 밥상에서 먹이를 주워 먹느라 분주했다.

 

바닷길이 열리면 ‘쌍도’까지 걸어가 볼 수 있는데, 70~80m 거리를 둔 두 개의 섬이 한 쌍 같다 하여 쌍도라 불린다. 이루지 못한 두 남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가 전해내려오는 섬. 물이 빠지면 하나의 섬이 되었다가 물이 차면 두 개의 섬이 된다. 선도리 쪽에서 보면 왼쪽 섬은 거북 모양, 오른쪽 섬은 고래 모양을 닮았다. 

 

금강하굿둑 부근 마서면 서천군 조류생태전시관(041-956-4002)에서는 서천 갯벌과 금강하구를 찾는 도요새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갯벌·바다 덕분에’ 프로그램을 9월 18일까지 진행한다. 예약 후 참가할 수 있다. 전홍태 서천군청 관광기획팀 주무관은 “8월 중순부터 10월까지는 송림리 갯벌과 유부도 일대에서 ‘도요물떼새’를 목격할 수 있다”고 했다.

 

장항읍 송림리 ‘유부도’ 일대는 사람의 발길이 적어 원시적인 모습의 갯벌을 관찰할 수 있다. 유인도이지만 마을 어선 외 정기연락선이 없어 오가기가 쉽지 않다. 현재로서 서천 갯벌을 한눈에 내려다보기 가장 좋은 곳은 장항읍 장항스카이워크. 높이 15m, 총 길이 250m로, ‘기벌포 해전 전망대’로도 불린다. 장항스카이워크 앞 바다는 신라와 당나라가 결전을 벌인 곳이다. 장항스카이워크는 울울창창한 해송 숲인 송림산림욕장에서 시작해 송림백사장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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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택트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장항 송림산림욕장. 코스에 따라 ‘장항스카이워크’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등으로 이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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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산림욕장부터 송림백사장으로 이어지는 장항읍 ‘장항스카이워크’. 전망뿐 아니라 울창한 해송 숲 사이를 15m 높이에서 걷는 기분도 색다르다.

 

장항스카이워크 전망대에 서면 탁 트인 장항 앞바다와 마주한다. 왼쪽으로 장항제련소 굴뚝이 보인다. 아름다운 갯벌을 품은 장항은 일제강점기인 1900년대 초 일제가 충청도 지역 미곡과 자원 수탈, 반출을 목적으로 바다를 메워 조성한 곳이다. 장항선, 장항항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들어섰다. 아픈 역사와는 뒤로 하고 장항 앞바다는 물때에 따라 갯벌 체험객들과 카이트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번갈아가며 찾는 서천의 명소가 됐다. 장항화물역이었다가 복합문화공간이 된 인근 장항도시탐험역 전시관으로 가면 장항의 역사를 더욱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피톤치드 뿜어내는 27㏊의 해송 숲은 장항스카이워크를 찾는 이들에게 보너스와 같은 곳. 소나무 숲 사이 여러 갈래의 길은 제법 한적해 언택트(비대면) 삼림욕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숲 뒤편엔 ‘씨큐리움’ 국립해양생물자원관(041-950-0600)이 있다. 바다 생물의 생태를 한눈에 배워 갈 수 있는 곳. 전시관 내에선 우리나라 해양생물의 표본 4200여 개를 담아낸 원형 기둥 ‘생명의 탑’ 등이 볼거리다. 인근의 국립생태원과 연계 관람하면 입장료를 할인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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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항 ‘국립해양생물자원관’ 중앙에 있는 ‘생명의 탑’. 해양생물의 ‘종자은행’이다.

 

한산모시·소곡주의 고향

 

갯벌을 실컷 구경했다면 인류무형문화유산인 한산모시짜기를 만날 차례. 씨실과 날실이 정교히 교차해 완성되는 단아한 모시의 아름다움은 한산모시관(041-951-4100)에 집약돼 있다. 한산모시의 맥을 잇는 한산모시관 내 전통 공방에선 때에 따라 국가무형문화재 제14호 한산모시짜기 기능 보유자인 방연옥(77) 선생을 만날 수 있다. 시기에 따라 방연옥 선생이 전수자인 며느리 김선희씨와 함께 ‘모시매기’ 하는 모습도 엿볼 수 있다. 모시매기는 날실이 서로 붙지 않게 벳솔로 콩풀을 먹이는 과정. 며느리 김씨가 콩풀을 먹이면 방 선생은 실이 붙지 않게 일일이 손으로 다듬는다. 모시풀 수확부터 모시짜기까지 여덟 단계를 거치며 한 올 한 올 사람의 손을 타야만 원단으로 완성되는 모시는 옷이라기보다 작품에 가깝다. 완성된 한산모시는 ‘모시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과거 한산 지역의 모시 짜던 가옥 형태를 재현한 초가집, 공방까지 둘러보면 반나절이 훌쩍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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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면은 소곡주의 고향이기도 하다. 한산모시관에서 차로 3~5분 거리에 한산소곡주 갤러리(041-951-5856) 있다. 한산소곡주는 무려 1500년 전통을 자랑하는 ‘백제의 명주’로 알려졌다. 백제 멸망 당시 백제 유민들이 나라 잃은 한을 달래기 위해 한산 건지산 주류성에서 하얀 소복을 입고 빚었다 해서 ‘소복주’라 불리다가 ‘소곡주’로 변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천의 비옥한 땅에서 빚어내는 소곡주는 맛과 향이 좋아 한 번 맛보면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모른다고 하여 ‘앉은뱅이 술’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한산소곡주 갤러리에선 일대 양조장에서 만든 소곡주를 전시·판매한다. 주말에는 향음 체험과 술 빚기 체험도 진행한다. 일주일 전 예약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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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롱나무에 배롱꽃이 만발한 기산면 문헌서원. 고려 후기 이곡과 이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으로 서천 9경 중 하나로 꼽힌다.

 

배롱꽃 필 무렵엔 ‘문헌서원’

 

배롱꽃 필 무렵엔 문헌서원(041-953-5895)으로 발걸음이 이어진다. 서원의 ‘영당’ 뒤 기와지붕 위로 만개한 진분홍색 배롱꽃은 한 폭의 동양화다. 문헌서원은 서천의 9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고즈넉한 정취와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고려 말 대학자 가정 이곡과 목은 이색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기록상 1594년(선조 27년)에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서원치고 규모가 제법 크다. 재향 공간인 효정사, 영당·영모재 등을 비롯해 강학 공간인 진수당·동재(존양재)·서재(석척채), 연못과 경현루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문헌서원 입구 ‘문헌한옥호텔’에선 한옥 스테이와 제철 먹을거리 밥상인 문헌정통밥상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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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된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의 ‘판교 극장’.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서천의 ‘근대’를 느낄 수 있는 마을도 있다. 판교면 현암리는 1930년 충남선 판교역이 문 열면서 철도 교통의 요지로 발달해 1970년대 산업화 시기 번성기를 누렸던 곳. 그러나 1980년대 국토개발에서 소외되고 2008년 판교역까지 이전하면서 급격히 쇠퇴했다. 언뜻 시간이 멈춘 시골 변두리 같지만 ‘옛 공관’이라 불렸던 ‘판교극장’을 비롯해 ‘동일정미소’와 ‘동일주조장’ ‘장미사진관’ ‘오방앗간(삼화정미소)’ 등을 돌다보면 마치 시대극 속 세트장에 들어선 것만 같다. 누구의 손도 타지 않은 ‘진짜 옛날’ 풍경은 ‘레트로’라는 유행어보다 ‘오리지널 빈티지’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일대는 곧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거듭난다. 일제 강점기부터 현대까지 근·현대기 농촌 지역의 경관과 건축사, 생활사를 엿볼 수 있는 요소들이 비교적 온전히 남아 있다고 인정받아 이달 초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 예고됐다. 바야흐로 ‘서천의 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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