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 인터뷰

최고령 웹툰 신인왕 된 ‘까치 아빠’ 이현세

글 : 이가영 조선일보 기자  |   사진 : 조선일보 아카이브

오프라인 극화 만화가 인터넷 웹툰에 자리를 내주는 것에 위기를 느껴왔던 이현세가 스스로 웹툰 참여를 선언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코리안 조>를 시작으로 <천국의 신화> <늑대처럼 홀로> 등을 웹툰으로 선보이며 이현세 다운 우렁우렁한 필치와 원색적인 텍스트를 인터넷 세계에 펼쳐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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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 본능 여전한 늙지 않는 ‘까치’

 

만 66세를 맞은 이현세. 분명 그의 전성시대가 지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그의 이름을 거론할 때마다 설렘과 감격을 반복하며 만화라는 로망의 세계에 뛰어들 준비를 하게 된다. 오랜 세월 속에 거장 이현세의 모습은 수척해지고 흰머리도 많아졌지만 결코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그의 눈동자다. 사람을 꿰뚫어보는 눈동자, 자신 있게 선과 악을 얘기해 줄 수 있을 것 같은 눈빛에 우리는 이내 탄복하고 만다. 하지만 그의 만화를 보고 나면 잠을 이룰 수 없다. 해피엔딩과 사필귀정에 익숙한 우리에게 그의 결말은 새로운 갈등을 만들곤 하기 때문이다. 

 

그는 항상 만화는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화를 가장 대중화시키는 작가가 되고 싶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늘의 이현세를 있게 한 <공포의 외인구단>은 한국 만화 역사에서 범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은 최초의 만화다.

 

한국 만화의 대중화는 <공포의 외인구단> 전과 후로 나뉜다. 1980년대 로봇처럼 말 잘 듣기만을 강요하던 암울했던 시대에 저항하고 일탈하는 청춘상을 담은 이 만화는 억압받던 세대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대흥행했다. 외인구단 등장 이후 만화방은 10배 가까이 성장했고, 전국의 만화방 절반 이상은 <공포의 외인구단>의 주인공 이름을 따 까치가게, 엄지가게로 이름 붙여질 정도였다. <공포의 외인구단>을 리메이크한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은 최근의 <나의 해방일지> 못지않은 신드롬을 만들어내며 1986년의 홈런작으로 떠올랐다. OST ‘난 너에게’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으며 야구선수들과 그들을 사랑했던 수많은 사람에게 ‘외인구단’은 순수와 열정의 아름다움을 일깨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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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세에 쌓아올린 열주, 웹툰 신인상 

 

이현세, 그보다 예리하게 연필을 잘 깎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거다. 긴 연필을 날카로운 검처럼 쑥 빼들고 쓱싹쓱싹 소리를 내며 몇 개의 선을 그으면 어느새 철사 같은 머리 모양의 까치와 매혹적인 여인 엄지가 웃거나 울면서 나타나 우리를 설레게 만든다. 

 

66세, 생애전환기를 맞은 그는 웹툰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뛰어들며 한국만화의 지존임을 새삼 증명하고 있다. 매일 8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그의 작품은 포털 사이트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과 당당히 경쟁하고 있다. 최근엔 웹툰 신인상도 받았다. 이현세는 수상 소삼에 “처음에는 재미있다, 라는 느낌이었는데 단상에서 내려올 때쯤엔 울컥했다”며 “아직은 내 자리가 있다는 생각에 기쁨이 차올랐다”고 했다. 이어 “처음에는 재미있어서 웃었다가, 그다음에는 울컥하면서 아직도 내게 이런 공간이 주어지는구나. 젊은 친구들과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축복”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이현세에게 만화 잘 그리는 법을 묻곤 한다. 그러면 그는 화장실 낙서처럼 그리라고 답변한다. 정말 화장실 낙서는 재미있다. 정직하기 때문이다. 익명으로 그린 그림이어서 자기의 내면과 성적 욕구에 솔직하다. 만화는 그에게 꿈이며 삶이다. 그에게 만화를 그리는 행위는 꿈을 그리는 작업이고 이것은 그의 운명이며 삶이다. 만화를 그리지 않는 그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는 빛나는 청춘도 아니고, 머릿속에 고도의 지식이 들어 있는 석학도 아니다. 그는 오로지 만화가 이현세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대중작가라는 칭호가 어울린다. 단지 만화를 그리는 ‘만화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칭호를 꽤나 마음에 들어 한다. 자신을 예술가라고 부르면 그는 좀 피곤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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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라는 삶에 기대고 매달린 생애

 

이현세는 자신의 만화가 인기를 얻은 후 가장 기뻤던 순간을 묻자 “단독 주택을 구입했을 때”를 꼽았다. 큰어머니, 할머니까지 4대가 모여 살던 집에서 자란 그는 “처음 집을 가졌던 기쁨은 잊을래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서울 목동에 분양하던 아파트 값이 2,000만 원 하던 시절, <외인구단> 한 권의 원고료가 500만 원에 달했다고 한다. 이현세는 만화가 최초로 단독 CF까지 찍으며 그야말로 ‘신드롬’을 만들었다.

 

그런 이현세에게 마흔 즈음 위기가 닥쳤다. 만화 <천국의 신화>가 음란·폭력 시비에 휘말리며 형사재판을 받게 된 것이다. 한반도의 선사시대를 다룬 작품이었는데, 알몸이 나왔다며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됐다. 이현세는 “10만원도 낼 수 없었다”며 “타협하고 무너지면 평생 동료와 후배들을 볼 수 없었다”고 했다. 결국 6년간의 긴 법정 다툼 끝에 무죄로 결론 났다. 그러나 50대가 된 그에게 또 하나의 시련이 다가왔다. 당뇨와 위암이 그의 몸과 마음에 파고든 것이다. 게다가 까치와 엄지의 세상은 이내 저물고 생판 모르는 웹툰의 시대로 변해있었다. 

 

“표현의 자유를 달라는 소송으로 시간 다 보내고 나니 그 사이 만화의 중심은 종이에서 인터넷으로 넘어가 있었어요. 만화 잡지를 보면 나는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겠는데 인기 순위 1위고 2위고 3위인 거예요. 정신이 번쩍 들었죠. ‘아 그동안 이현세 참 잘 놀고 자빠져있었구나…’ 싶더라고요. 그런 깨달음과 반성으로 마음을 다잡으며 그린 게 <이현세 만화한국사>였죠. 돌이켜보면 그 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파랗고 치열했던 시절이 아닌가 싶어요.”   

 

이제 누구나 만화를 즐기는 시대가 됐다. 설사 70대 시니어라도 만화를 보고 옛날처럼 “에이, 만화잖아” 하며 가벼이 여기는 경우는 없다. 빠르게 달리는 도심의 열차 속에서 60대 아저씨가 모바일 웹툰을 보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든 계기, 그것은 바로 이현세가 만들어낸 만화의 아름다움과 매력에서 기인한 것이다. 절정으로 치닫는 여름, 휴머니즘과 로망 그리고 사내들만의 미학이 가득한 그의 드로잉과 텍스트에서 생의 모험을 발견해 봄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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